글밭/시(詩)를 찾아서[1]

섶섬이 보이는 방- 나희덕시인의 시(詩)

꿈꾸는 초록강 2009. 1. 23. 00:02

   섶섬이 보이는 방/ 나희덕

   -이중섭의 방에 와서

 

  

   서귀포 언덕 위 초가 한 채

   귀퉁이 고방을 얻어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묻혀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안아

   조개껍데기처럼 입을 다물던 방,

   게를 삶아 먹은 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

   소라껍데기를 그릇 삼아 상을 차리는 발가락군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

   방이 너무 좁아서 그들은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높이 가질 수 있었다

   꿈 속에서나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새를 타고 날아다니고

   복숭아는 마치 하늘의 것처럼 탐스러웠다

   총소리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섶섬이 보이는 이 마당에 서서

   서러운 햇빛에 눈부셔 한 날 많았더라도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해질 때까지 놀았다

   게가 아이의 잠지를 물고

   아이는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

   물고기는 아고리의 손에서 파닥거리던 바닷가,

   그 행복조차 길지 못하리란 걸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빈 조개껍데기에 세 든 소라게처럼

 

 

 

   * 화가 이중섭과 그의 아내가 서로를 부르던 애칭

 

   <2008 제22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작>

 

 

 

   나희덕 시인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89년 <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뿌리에게>ㆍ<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ㆍ<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ㆍ<사라진 손바닥>ㆍ산문집<반 통의 물>.

   김수영문학상ㆍ김달진문학상ㆍ현대문학상ㆍ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소월시 문학상.

   현재 조선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 자료출처 :소월시문학상작품집, 나희덕외, 문학사상사,  2007

  

 

Posted by 남한강 23.01.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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