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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있는 사람에게 2 - 강가에서

꿈꾸는 초록강 2008. 9. 1. 20:12

               - 울고 있는 사람에게 2 -

강가에서

 신경림  

 

 

 

                                                           세상은 슬픈 거란다

한없이 서러운 거란다

새빨간 저녁놀에

날개 적시며 물새는 울고

 

산다는건 홀로 서 있는 것

혼자서 강길을 가는 것

엉겨붙는 바람에 몸 내맡기고

언덕에 미류나무는 서 있다

 

얻는 것은 고통 뿐

남는 것은 고달픔 뿐

지친 기곗소리 어스름속

신작로는 덜컹대지만

 

오늘도 별은 하늘에 뜨고

풀잎엔 맑은 이슬 맺힌다

 

Photo (kbs드라마 행복한 여자)

 

신경림시인의 '강가에서'를 20년전 쯤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좀 고달프게 살 때 였기에 이 시를 읽으며 한없이

슬프고 서러웠었지요. 한강이 가까운 곳에 살았기에

새벽마다 한강을 찾아갔는데 강은 언제나 평온하게

조용히 흐르더군요.

옛날 아주 어릴적에 어느 어른이 강가에서

해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 얘야, 왜그렇게 슬픈 얼굴로 강가에 서 있니?

왜, 뛰어들고 싶어? 아서라. 그러지 말아라!

이 할아버지 이야기 좀 들어볼래? "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시작 되었습니다.

옛날 어느 고아 소년이 사는게 너무 힘들어

이제 더는 배고프고 추워서 못살겠다고 강에 왔더래요.

너무 배가 고파서 등에 딱 달라붙은 배를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소리 쳤답니다.

 

" 엄마! 아빠! 왜 날 낳으셨어요?

이렇게 춥고 배고픈 세상에 나 혼자 던져놓고

왜 엄마 아빠만 하늘로 가셨어요?

더이상 못살겠어요. 나도 엄마 아빠한테 갈래요! "

 

그리고는 마지막 한 개 남겨 두었던 건빵을 입에 털어넣고

다리 난간에 한 쪽 다리를 척 걸쳐 놓았답니다.

그 때 누군가 소년의 뒷덜미를 잽싸게 움켜 잡았지요.

그리고 등 뒤에서 꽉 껴안고 말했답니다.

 

"저 강물을 보렴.

강 위에 떠가는 나뭇잎들과

 쓰레기 봉투들을 가만히 보렴."

 

 그래서 소년은 가만히 바라 보았습니다.

 나뭇잎도, 쓰레기 봉투도 슬슬슬 모두 떠내려 가고 

강은 다시 깨끗하고 맑은 가슴이 되고. 또 조금 있으니

아름다운 나룻배 하나가 스르륵 지나가는데

강은 찰랑대며 은빛으로 빛나며 노래하고

또 조금 있으니 더러운 부유물들이 둥둥 떠내려 오고

그게 다시 떠내려 가니 강은 다시 깨끗하고 맑게 흐르고.

 

" 얘야! 보았지? 우리네 인생도 저 강과 같단다.

지금 슬퍼서 죽을것 같아도 내일은

기뻐서 자지러지게 웃을 일이 생기고

지금 기뻐서 가슴이 터질듯 해도

내일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단다.

저 위에 하느님만 아시지.

그러니까 우리 강처럼 살자 !

바람이 나를 때리면  바람에 내 몸 내어 맡기고

햇볕이 날 쓰다듬으면 또 내 몸 내어 맡기고

흐르는 저 강처럼 유유히 살면 된단다."

 

소년은 그 분의 말씀을 듣고 강가를 떠났고 다시는

강가에 와서 울거나 뛰어들려 하지 않았대요.

그대신 매일 강을 바라보며 강처럼 살면 돼, 강처럼 살면 돼

그러며 오래 오래 잘 살았대요.ㅎㅎ 정말.

 

저는 어제 제가 몹시 사랑하는 아우를 만났는데요.

늘 햇살처럼 밝고 환하던 아우의 얼굴에 그늘이 있었어요.

그동안 여러가지 좀 속상하고 억울한 일을 겪었는데 그 이야기를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깔깔 호호대며 재미있게 들려 주었어요.

그런데 웃는 얼굴이 더 슬프다고 나의 가슴이 얼마나 짠~ 하던지요.

그리고는 함께 식사를 하는데 얼마나 많이, 얼마나 쉴새없이 먹던지

그 모습이 너무 슬펐어요. 마음속에 허공이 있나봐요.

메꾸고 메꾸어도 채워지지 않는 큰 허공이 생겼나봐요.

  무거운 것이 마구 누르듯이 가슴이 저리고 아팠습니다.

 

핏줄이란 이렇게도 가슴 저미도록 아픈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어제 밤을 꼬박 새우고 혼자 슬퍼하다가

 나의 사랑하는 아우와

또 우리 아우처럼 상처입고 혼자 울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오래전 독서 비망록을 꺼내 이 시를 적어 보았어요.

 

 엄마 등뒤에 딱 붙어서서 울고 있는 딸과 엄마의 사진을 보세요.

 드라마 속의 장면인데 무척 서러워 보이지요?

왜냐구요? 엄마 등뒤에서 울고 있잖아요.

결국 함께 울어도 나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고

 엄마의 서러움은 엄마의 것이 랍니다.

그래서 우린 외로운 것이겠지요.

신경림시인의 '강가에서'는

바로 그런 뜻이 아닐까요?

 

Posted by namhanriver 200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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