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시(詩)를 찾아서[1]

눈 내리는 저녁-홍윤숙 시인의 시(詩)

꿈꾸는 초록강 2010. 1. 5. 13:59

 

 

 

 

 

 

 

눈 내리는 저녁 / 홍윤숙 詩人

 

눈 내리는 저녁길엔

목화꽃 지는 냄새가 난다

할머니 옛날 목화솜 자으시던

물래소리가 난다

한밤에 펼치시던 오색 조각보속

사각사각 자미사  구겨지는 소리 나고

매조 송학 오동 사꾸라

유년의 조각그림 몇장

떨어지는 소리도 난다

 

어디서 그 많은 이야기를 실어 오는지

어디서 그 작은 소리들을 풀어 내는지

 

눈 내리는 저녁 길엔

눈 덮힌 고향집 낮은 굴뚝담 위

굴뚝새 푸득푸득 날으는 소리 나고

한필 삼팔명주 하얗게 삭아내린

매운 세월 넘어

어머니 젊은 날 혼자서 넘으시던

오봉산 골짜기 눈에 묻힌 길

수묵으로 풀어내는 한 오백년

쇠락한 세한도(歲寒圖)도 있다

 

사십년 걸어도 닿지 못한 나라

눈 내리는 저녁길엔

문득 그 나라 먼 길을 다 온 것 같은

내일이나 모래면

그 집 앞에 당도할 것 같은

눈 속에 눈에 묻힌 포근한 평안

더는 상할 것 없는

백발의 평안으로 잠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