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정호승 詩人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서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글의 출처: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열림원, 2008
'글밭 > 시(詩)를 찾아서[1]'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의기도 -김현승 시인의 시(詩) (0) | 2009.09.19 |
---|---|
보리밭- 안도현 시인의 시(詩) (0) | 2009.09.17 |
꽃-기형도 시인의 시(詩) (0) | 2009.08.31 |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김소엽 시인의 시(詩) (0) | 2009.08.28 |
산에 언덕에-신동엽 시인의 시(詩) (0) | 2009.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