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그 이미지
하늘 그 이미지...
'하늘'이라는 발음에서 오는 어감을 나는 좋아한다. <하느을->, 우리 말의 이
어감은 높고 가없이 넓고 깊은 경모 연모와 자비 자애 그리고 고결한 .....온갖
경건하면서도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연상시켜, 무릎 꿇어 하소연하고 싶고, 엎
드려 빌고 싶고 맹세하고 서원하고 싶은 마음을 조용히 바람일게 한다. 나는
'하느을'이라는 우리말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늘
을 지칭하는 어느 외국어의 발음보다 아름답고도 존귀한 품격을 지녔다고 생
각한다.
-유안진 시인<'경건한 맹세를 올리고 싶은' 에서>
'하늘', 정결하고 경건한 이 말을 두고 시를 써보고자 얼마나 애썼던가. 어릴적
따끈한 자갈밭에서 누워서 바라본 하늘. 시집가자 마자 혼자된 고모가 떠나시던
날, 징검다리 물밑에 잠겨있던 가을하늘. 엄마와 함께 외갓댁 가는 길 석문쟁이
산대추나무 아래서 바라보던 여름하늘, 유학시절 기숙사 돌층계에 앉아서 울먹이
며 바라보던 먹장구름 밀려오던 어두운 하늘, 옥색모시치맛폭에는 영낙없이 어려
있던 여름날의 가을하늘, 진달래꽃 붉은 산바윗돌에 앉아 쳐다보던 몽롱한 봄하
늘. 금방이라도 여름날의 터질듯한 겨울날의 눈밴 하늘.....
-유안진 시인 '경건한 맹세를 올리고 싶은'에서
나는 때로 억울하고 슬퍼지고 변명할 용기도 없어질 때 하늘을 우러러 본다.
더불어 살아갈 용기도 슬기도 없다고 느낄 때 하늘을 우러러 간절한 마음을
뵈어드린다. 하늘을 우러르면 나는 왠지 눈물이 돈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하늘은 내 마음을 속속드리 다 헤아려 보시리라 굳게 믿
는다. 이것도 일종의 나의기도이다.
-유안진 시인,'경건한 맹세를 올리고 싶은' 에서
풀밭에 누워 하늘을 보던 유년기.
내게도 그런 전설같은 유년기가 있었다.
그 때 하늘은 그저 끝없이 푸른 바다, 그대로 온 몸이 빠져들 것 같은 하늘의
바다같다고 생각했었다. 밤이면 동산에 올라 총총이 별들이 박힌 새까만 천
공을 바라보며 무심히 별 하나 별 둘을 헤던 밤하늘도 있었다.
- 홍윤숙 시인'영원히 부태하지 않는 허무'에서
여섯이던가 일곱이던가 여름 어느날 할머니 손잡고 따라갔던 강건너 봉은사
가는 길 흐미진 풀숲에서 바라보던 낯설은 들길의 하늘도 있고 나들이 간 할
머니를 기다리며 동구밖 느티나무 아래서 지켜보던 발갛게 노을진 저녁 하늘
도 있다. 무지개로 수놓던 하늘, 천둥번개로 까맣게 숨죽던 하늘, 안개와 구름
과 달빛과 눈비로 각기 변모하던 사계의 하늘이 내 유년의 화첩 속에서도 곱
다랗게 담겨져 있다. 그것은 모두 어머니의 기억처럼 따뜻하고 포근하다. 잊
어 버리고 거의 생각하지 않는 것같으면서 실은 내부의 생명, 끊임없이 불태
워주는 어머니의 기억처럼 잠재적이고 근원적인 것이다.
-홍윤숙 시인'영원히 부패하지 않는 허무'에서
빛나는 양광속에 무한처럼 널린 하늘, 거기엔 분명 감각의 도취가 있고 살아
있는 기쁨 생의 축제가 분수처럼 뿜어지고 있다. 하여 우리는 모든 희망과 축
원을 건 말로 하늘을 대신하기도 한다. 푸르고 다사롭고 영원같은 가슴으로
사람을 황홀하게 끌어안고 그리도 부드러운 무관심으로 행복하게 하고 그러
나 이윽고는 현실의 나락으로 추락시키고야마는 허무의 공간, 하늘을 어찌
단순히 빛과 희망과 비상의 상징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오히려 그 퇴색함
이 없는 평화적 구원의 푸른 색조에서 탈출할 길 없는 허무의 깊은 늪을 보고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 비물질적 시공 안에서 시시로 부패해가는 물질, 생명
의 비극을 실감한다. 하늘.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 허무.
-홍윤숙 시인,'영원히 부패하지 않는 허무'에서
바다와 인연이 없었던 나는 30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바다를 볼 수가 있었다.
아~ 그때 그 바다와 하늘의 맞닿아 있는 모습! 하늘과 바다가 한빛으로 가까워
가다가 마침내는 빛갈을 넘어 한 선(線)으로 화해 있는 모습! 그것은 순간 나에
게 많은 것을 던져 주는 것만 같았다. 육지와 바다, 육신과 영혼, 생명과 죽음,
하늘과 땅, 시간과 영원, 이러한 이미지들이 한꺼번에 한 맥박으로 가슴을 치
는 것만 같았다. 하늘과 바다가 합한 그 멀면서도 가까운, 다정하면서 충격이
었다. 그후로 나는 시를 쓰겠다는 생각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김동아 시인'천지만물이 다'에서
하늘의 색깔은 어디서나 어느 떄와 동일하다. 그렇지만 경우에 따라 달라 질 수
있으니, 생활이 유족하고 걱정이 없는 사람은 맑게 보일 것이오, 시장에서 내일
이면 썩을 물건을 소화시키기 위해 고객을 향해 고함치는 사람의 하늘은 맑지
못하다. 하늘의 색깔이 어디서나 같다 함은 하늘의 포용력을 말하는 것이리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숨이 나올 때 하늘을 쳐다 본다. 하늘은 어머님과 같은
것, 조국과 같은 거, 종교와 같은 것일까. 맹자의 인생 삼락에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第二樂에 두었다. 하늘은 그만큼 우리에게 교훈을 주며
종교를 주는 하느님과 같은 것이다.
-윤태혁 시인'그 넓이와 갚이'에서
멀고 높은 하늘빛이 낙동강에 온통 빠져 있다. 너무도 가까이 닿아와 있는 색감
이다. 손으로 움켜쥐면 일상으로 잡사를 저지른 손바닥에 때앉은 오염을 씻어주
는 하늘빛 강물이 손금에 넘친다. 그 색감처럼 서늘한 촉감이 생명수처럼 전신에
스며오면서 나의 내면에서 싱싱히 퍼덕이는 하늘빛이 생동한다.
-박곤걸 시인 '을숙도의 하늘 빛'에서
나는 나 때문에 얼마나 숱한 나날들을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과 시간을 빼았겨
버렸는가. 하늘에 제사 지내고 하늘에 온 운명을 맡김으로써 행복감을 느꼈던
원시에의 벌거숭이 생활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인가. 결국 우리의 이상적인 삶
의 길은 하늘의 길을 걷는 길만이 있을 따름이다.
-오상태 시인,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에서
하늘은 희망이다. 청운의 희망이다. 젊은이여, 날개를 펴라. 구만리 장천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음껏 뛰어들어 무제한 너희들의 성을 구축하라. 꿈을 가져라.
두드리면 쨍 쨍 쨍 맑고 밝게 열리리라. 그리하여 하나의 세계, 너의 하늘을 완성
하라. 하늘눈, 하늘귀로 보고 듣고 하늘마음, 하늘얼굴을 가져라. 현실이 땅의 일
이 각박하다 하는가 그럴수록 산상에서 듣는 하늘울림은 단순명백한 대답을 너
희에게 주리라.
-정대구 시인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에서
우리들의 영원한 이데아이고 영원한 깃발인 하늘!
그 하늘은 어디를 가나 똑같은 채로 미움과 희생과 사랑을 초월하여 똑같은 채로
있다. 그리고 절망도 기쁨도 저 하늘과 거기서 내려오는 빛나는 은근한 열기 앞에
서는 아무런 근거도 없어 보인다.
-최우림 시인, '나의 깃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