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시(詩)를 찾아서[1]

손님- 백무산시인의 시(詩)

꿈꾸는 초록강 2009. 4. 19. 16:18

 

손님- 백무산

  

   

내가 사는 산에 기댄 집,  눈 내린 아침

뒷마당에 주먹만한 발자국들

여기저기 어지럽게 찍혀 있다

발자국은 산에서 내려왔다. 간혹

한밤중 산을 찢는 노루의 비명을

삼킨 짐승일까

 

내가 잠든 방 봉창 아래에서 오래 서성이었다

밤새 내 숨소리 듣고 있었는가

내 꿈을 다 읽고 있었는가

어쩐지 그가 보고 싶어 나는 가슴이 뜨거워진다

몸을 숨겨 찾아온 벗들의 피 묻은 발자국인 양

국경을 넘어온 화약을 안은 사람들인 양

곧 교전이라도 벌어질 듯이

눈 덮인 산은 무섭도록 고요하다

 

거세된 내 야성에 피를 끓이러 왔는가

세상의 저 비루먹은 대열에 끼지 못해 안달하다

더 이상 목숨의 경계에서 피 흘리지 않는

문드러진 발톱을 마저 으깨버리려고 왔는가

누가 날 데리러 저 머나먼 광야에서 왔는가

눈 덮인 산은 칼날처럼 고요하고

날이 선 두 눈에 시퍼런 불꽃을

뚝뚝 떨구며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발자국을 궁금해 하고 그리워하고 염려하는 이가 아직

도 있다. 스스로를 뜨겁게 하고 긴장하게 하는 발자국 앞에서

거세된 야성을 부끄러워하는 이가 아직도 있다. 정말 아직도

있다는 게 슬프도록 찬란하다.

  그런데 발자국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 야성 같은 것은 진

즉 개에게 던져 주었다는, 목숨의 경계가 아니라 어느 한쪽에

투항하고 사는 게 오히려 속 편하다는 듯, 광야보다는 포근한

이불 속이 더 낫다는 듯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 인간들도 있다.

이 시는 자기 성찰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실은 현실에 안주

하는 삶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다,

 

- 시 감상평:안도현시인

 

자료출처 :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이라 하네, 안도현 엮음,

               도서출판 이가서,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