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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은 죄 - 당나귀처럼

꿈꾸는 초록강 2008. 11. 5. 11:51

살고 싶은 죄

-  한마리 어린 당나귀처럼 -

 

  

당나귀처럼

 

오늘은 오래전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이런 삶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잊을만하면 나의 방에 찾아와서 오랜 시간을 앉아 있다가 가는 젊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림을 배우고 싶어왔습니다. 하더니 그 다음에 찾아왔을 때는 그림 배우겠다는

얘기는 없고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습니다. 만성적인 우울증 환자 같기도 하고

 무언가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듯도 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또 그러다보니 한동안 오지

않으면 궁금해 하고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게 되었지요.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서울에 온 그녀는 백화점 영업사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외롭고 추운

객지생활 중에 만나서 사랑하게 된 사람은 같은 백화점에 근무하던 상사였는데

이미 결혼한 사람이었어요. 결혼은 했지만 아내가 가출하여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또 아무런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이 그 남자와 동거 생활에 들어갔습니다.

그녀가 애써서 버는 돈은 그 남자와 그 남자의 어머니가 모두 살림에

 보태어 써 버렸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생활비를 버니까 생활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몇번이나 임신을 했지만 그 남자가 원하지 않아서 그때마다 중절수술을 할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아기를 가졌는데 이제는 아기를 낳고 싶다는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그녀가 아기를 낳겠다고 하니까 남자와 그의 어머니가 펄쩍뛰며 반대를 하더니 구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임신을 한 후 너무 힘이 들어 백화점을 그만 었더니 노골적으로 구박하며

 아예 나가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날은 얼굴이 퉁퉁붓고 눈도 핏발이 선 것을 보니 더

심한 학대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위로의 말을

 찾다가 제가 몹시도 사랑하는 시(詩)인 조병화선생님의

<당나귀>라는 시를 읽어 주었습니다.

 

당나귀

 

아이야 그렇게 미워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마구 때리질 마십시오.

낙엽이 솔솔 내리는 긴 숲길을

아무런 미움이 없이 나도 같이 갑시다

어쩌다가 멋모르고 태어난 당나귀

나 한마리

살고 싶은 죄 밖엔 없습니다

외로움이 죄라면 하는 수 없는 죄인이 올시다

낙엽이 솔솔 내리는 저문 이 길을 보십시오

나도 함께 소리없이 끼어 갑시다

 

- 조병화시인의 '당나귀' 전문 -

 

숨죽여 시낭송을 듣던 그녀가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지켜보는 저도 설움이 복받쳐 함께 울기 시작했지요.

한마리 어린 당나귀 같았던 그녀의 삶. 외로워서 잡은 손을 그녀는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구박을 받으서도 그리고 매일 

얻어터지면서도 끊을 수 없는 정 때문에 함께 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소박한 소망을 가진 그녀에게 삶의 모진 매가 그만 내리기를

간절히 빌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Posted by namhan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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